아틀레티코 vs. 발렌시아, 챔피언스리그 못지 않았던 유로파 리그 열기
그 동안 유로파 리그 경기의 풍경은 초라했다. 관중석은 가득 차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선수들의열정도 리그 경기보다 떨어져 보였다. 하지만 아틀레티코와 발렌시아의 경기는 달랐다. 챔피언스리그 무대의 단골 손님이기도 한 둘의 대결은 ‘별들의 전쟁’으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다.
비센테 칼데론은 남쪽 골문 뒤 상단 구석의 발렌시아 원정 팬들을 제외하곤 경기장 전체가 하얀색과 빨간색 줄무늬의 아틀레티코 유니폼으로 가득 메워졌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마드리드 더비, 바르셀로나에게 시즌 첫 패배를 선사한 홈 경기 이후 5만 4천여석의 비센테 칼데론 경기장이 가득 찬 것은 올 시즌 들어 이번에 세번째다. 유로파 리그 우승에 대한 아틀레티코 팬들의 기대감의 크기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득점 없이도 화려했던 공격 축구의 향연
스페인에서 축구 경기란 기본적으로 내용 면에서 재미 있어야 한다. 아틀레티코와 발렌시아의 전반전은 양 팀 모두 빼어난 기술력을 선보였지만 기자석 부근에 앉은 아틀레티코 팬은 “이정도는 지루한 경기라고 할 수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스페인에서는 아름다운 축구를 향한 기대치가 승리에 대한 열망만큼이나 높다.
후반전에 돌입하면서 스페인 내에서도 열정적이기로 유명한 아틀레티코 팬들은 경기 내내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자랑하며 응원전을 벌였다. 아틀레티코가 연이어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내자 응원의 함성은 더욱 커졌다. 디에고 포를란의 로빙 슛이 간발의 차이로 골문 옆으로 빠졌고, 위팔루시가 1:1 기회에서 세사르 골키퍼의 선방에 걸렸으며 라울 가르시아의 중거리슛도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후반 35분 비야의 슈팅이 크로스바를 때렸고, 지기치와 나바로의 연이은 헤딩 슈팅은 데 헤아의 슈퍼 세이브가 아니었다면 골로 연결될 뻔했다. 경기가 종반으로 흐르면서 모두가 예민해졌다. 선수들은 거칠어지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선수들 사이의 감정 다툼, 판정에 대한 선수들과 팬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절대적으로 수적 열세에 있는 발렌시아 원정 팬들 역시 양 손을 뻗으며 목청을 높였다. 발렌시아팬들은 발렌시아를 상징하는 색 중 하나인 주황색 티셔츠를 입고 모여 소수임에도 현란한 응원전을 벌였다. 아틀레티코의 5만여 팬들은 “아틀레~티!”를 외치는 단체 함성으로 이를 묻었다. 경기 종료 3분을 앞두고 비센테 칼데론 경기장은 꽃샘추위 속에도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종료 휘슬이 울리고 경기장의 함성은 정점을 때렸다. 경기는 득점 없는 무승부로 끝났고, 원정 경기 다득점 원칙으로 아틀레티코가 준결승 진출의 주인공이 됐다. 대게 0-0 무승부는 축구 경기에서 최악의 결과로 꼽힌다. 하지만 때론 0-0 무승부가 대량 득점이 난 경기보다 흥미로울 때가 있다. 아틀레티코와 발렌시아의 경기는 0-0 무승부 역사상 최고의 경기 중 하나를 장식했다.